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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Plant Diary: How We Take Root (By Kim Chihyun)

우리가 뿌리내린 모습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셀 수 없는 계절이 스민 바위와 토양 위에 우리는 살아간다. 지금은 부서진 들판의 작은 조각이 배어나오듯 잡초는 도시 곳곳에 질기게도 튀어나와 있다. 지구의 살갗을 모방한 인공의 회색 콘크리트가 아무리 단단해도 오래도록 제자리의 수많은 주인 중 하나였던 작은 생물의 연한 촉수는 첨단의 광택을 녹슬게 하고 건물을 쪼개며 잎사귀를 펼친다. 정밀한 계산으로 하늘을 향해 서있는 건축물과 바닥을 검게 덮은 아스팔트는 각진 그리드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 아래 연한 바람에도 나부끼는 보잘 것 없는 한 줌의 녹색은 반듯한 거리에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실금이 가득한 균열에서 작가는 무정하고도 고요한 생명의 호흡을 듣는다.

도시라는 공간에는 정원이라 불리는 길들여진 자연이 있고 저 멀리 스카이라인을 뭉개 버리는 능선이 있다. 거주지에 식물이 공존하도록 하는 의도에는 환경이나 정치와 같은 여러 가지 사람의 계획이 담겨 있겠지만 쪼개진 세월의 상흔과 관심의 사각지대에 뿌리내린 잡초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 나름대로의 무성함과 질긴 생명력으로 자라고 뽑혀나간다. 잡초는 인공의 정점인 도시의 구성요소가 아닌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도시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작가는 풀 한포기가 지닌 끈질김과 인간사 따위에 무정한 생명력에 경외심을 표한다. 동시에 각박한 콘크리트 틈에서 뿌리내렸기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을 비롯한 동시대 사람을 풀에 투영하여 바라본다. 해마다 반복되는 벌초와 가지치기는 거리에 그늘을 드리운 식물이 더 건강히 잎사귀를 펼치게 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보기 좋게 조절하기 위함이다. 차량에 실려 아스팔트를 가로지르는 잘리고 뽑혀진 식물의 잔해는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배경에 분명이 존재하는 가로수의 녹색과 같은 성분이다. 이유와 결과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식물을 채우기 위해 식물을 비워야 하는 아이러니는 무성히 쌓인 잡초더미에서 나는 달콤한 풀냄새와 어우러지며 씁쓸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김제민이 그리는 풀의 모습은 장르 문학이나 영화의 장면에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다. 한 번도 선명히 기억해본 적은 없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 계속 존재했던 보잘 것 없고 소박한 모양으로 거리의 구석마다 그려져 있었다. 먼지와 오물로 옅게 얼룩진 구조물의 형태를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풀의 예측 불허한 유연함은 그 작은 크기와 고집스러운 싱그러움에서 천진난만한 모습이 엿보인다. 별 볼일 없기에 치열한 일상이 뿌리에 스며있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얼굴이 잎사귀에 담겨있다. 작가의 그림자는 풀 위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미물을 들여다보기 위해 수그린 허리는 살다보니 밟히고 바람에 스쳐 납작해진 풀처럼 기울어있다. 그 시선이 닿는 곳은 작은 면적마저 발랄하게 채운 연녹색 빛깔과 벽돌을 쪼개고 뚫고 나온 억센 뿌리의 모습을 한 사람의 자화상인 것을 풀은 모른다.

살아있기에 어김없이 들이킨 오늘의 숨에는 거리의 작은 풀이 뿜어낸 공기가 섞여있을 지도 모른다. 작은 존재에 많은 감정과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은 사람이 시대의 변화와 쓸모에 관계없이 잡초처럼 꾸준히 예술을 싹틔우며 감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은 풀이 우거진 고요한 장소를 화려한 벽돌로 덮어 생기를 부른다. 그렇게 북적해진 거리의 구석에는 어느새 다시 풀이 자라고 수많은 사소한 존재의 충돌과 결합이 도시를 이룬다. 김제민은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삶이 바퀴사이에서 자신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을 때 가까이 마주하는 작은 구석을 다룬다. 그 틈새에는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가는 단순한 규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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