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The Art of Vegetating
무위도식(無爲圖植) - The Art of Vegetating
김제민이라는 사람의 미술 작품에 대해 평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적잖이 놀랐다. 아무리 그가 식물, 특히 잡초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 왔다지만, 전시라든가, 비평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인간계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독자들도 눈치를 채시겠지만, 일개 이름 없는 풀인 나는 눈이 달려 있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오랜 벗인 엘과 김제민의 끈질긴 권유로 결국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엘은 인간으로서는 드물게 식물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에게 김제민의 작품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해 주었으며, 김제민의 말을 통역해 주기도 하였다. 엘은 스코틀랜드의 핀드혼 재단 창립멤버였던 도로시 선생의 지도하에 식물과의 소통능력을 훈련 받았다. 본래 우리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체계와는 매우 달라서 말이라기보다는 이미지 혹은 느낌과 유사한데, 이를 통한 의사소통에 어느 정도 제약은 있겠지만, 엘의 기록을 통해 나의 뜻이 최대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이 글은 나의 것이라기보다는 나와 엘, 그리고 김제민의 공동 작업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며, 이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해 준 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이다.
김제민이라는 작가는 꽤나 오랫동안 식물을 소재로 작업을 해 왔다고 한다. <잡초에 대한 오마주>라는 그의 첫 개인전이 열린 것이 2005년이었고, 그 전에도 그의 그림에서 식물의 형상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고 하니, 7-8년은 족히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 식물이라는 소재에 집착하는 것일까.
작가는 처음 식물을 그리게 된 것이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유년기는 물론 청소년기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보냈다. 흔히 '수유리'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 동네는 다소 외진 곳에 있으며 특히 삼각산의 자락에 놓여 있어서 서울이라기보다는 산골 마을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동네에서 자라면서 작가는 산을 놀이터로 삼아 놀았고, 그 곳에서 여러 가지 나무와 풀들을 흔하게 접하였다. 여러 야생의 식물들이 그에게 친근함과 위안을 주는 이유는 그런 배경에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명상적으로 바라본다거나, 그 아름다움을 예찬한다든가, 향수에 젖어서 그것을 표현한다든가 하지는 않는다. 대신, 황당하게도 식물들을 극단적으로 의인화한다든가, 어떤 상황에 비유함으로써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들을 꼬집고 풍자한다. 2005년에 열린 개인전 <잡초에 대한 오마주>에서는 사회에서 제거대상으로 지목된 잡초들이 우스꽝스럽게 의인화되어 끈질기게 살아남기 위해 헬쓰기구를 잡고 운동을 하는가하면, 2008년 <식물도시>에서는 전통 문인화에 등장하는 사군자 매란국죽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하거나, "군자의 덕목" 연작에서 사군자 대신 잡초들이 등장하여 오늘날 현대인들이 집착하는 속된 덕목들을 대변하여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고 한다. 2012년에 열린 <잡초비전 - 초식24>에서는 옛 무술서의 형식을 패러디하여 잡초들이 여러 위협에 맞서 호신술을 단련하는 24개 동작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인간들과는 다른 시간을 사는 우리 식물들로서는 그런 직접적인 의인화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붙박이로 태어나서 생을 마감하는 입장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활동하는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이 부러운 측면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2008년에 그렸다고 하는 "붙박이 인생 비상을 꿈꾸다" 등이 인상 깊게 느껴졌다.
이들 전시에서 작가가 보여준 일련의 작업들은 대부분 식물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그 외에도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형식의 측면에서 보면 작가는 드로잉, 회화,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면서 어떤 특정한 형식이나 미디엄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그 사용법, 혹은 운용에 있어서는 일관되게 어떤 유연함 내지는 허술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대상을 그릴 때 그것이 놓인 배경은 과감히 생략하거나, 대상 자체도 단순화해서 그것이 심지어는 일종의 '기호'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회화의 경우도 전통적인 유화의 느낌보다는 느슨한 드로잉의 느낌이 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작업을 통해 인간 사회나 삶의 방식의 일면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를 풍자하거나, 비꼬거나, 혹은 그저 씁쓸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내러티브는 중요한 요소이며, 그가 사용하는 매체나 형식도 결국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무겁다기보다는 가볍고, 고정되었다기보다는 유동적이고, 정형화되기보다는 비정형적인 요소가 많은 드로잉의 방식은 작가가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고자하는 이름 모를 연약한 식물들의 모습과 잘 부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식물들은 고정된 듯하지만 움직이고, 죽은 듯 지내지만 살아 있으며, 연약한듯하면서도 질긴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유동적이고 여백이 많은 그리기 방식은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더욱 촉발시키는 면도 있다.
이번에 전시하는 <무위도식(無爲圖植) - The Art of Vegetating>은 종전 전시들과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주제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방법에 다소 변화가 감지된다. 이전에 작가가 식물을 의인화하거나 식물을 통하여 직접적인 비유를 만들어내고, 의미 전달을 위해 그림 안에 글씨를 써 넣는 등 보는 이에게 직접적인 말 걸기를 시도하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적극적인 말 걸기가 아니라 조용한 보여주기의 방식을 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그 자체로 마치 누가 그린 것처럼 보이는 담쟁이 사진작업(Ivy Drawing, 2013)이나 특이한 모양의 나무를 캔버스에 옮긴 작업(tree, 2013) 등이 그렇다. 이러한 보여주는 태도의 변화는 제목에 있는 '하지 않는다'는 뜻의 '무위'라는 말에서도 암시되고 있는데, 작가는 직접적으로 무엇인가 를 선언하는 대신 관객에게 해석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가려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무위도식'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원래 무위도식(無爲徒食)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기만 함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작가는 이것을 무위도식(無爲圖植), 즉 '아무것도 안 하고 식물을 그린다'는 뜻으로 바꿔 썼다. 작가에 따르면 영어 'vegetate'는 '시간 때우다', '그냥 있다', '자다', '게으름피우다'라는 의미와 함께 '번성하다', '뿌리내리다'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Art'는 예술이라는 뜻과 함께 기술이라는 의미도 있다. 동양사상에서 무위는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연상시키는데, 그것은 꾸밈없이 자연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순리에 따라 살아감을 의미한다.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얼핏 나태하고 순응주의적인 태도를 용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제목에 내포되어 있는 복합적인 의미를 종합해 보면, 추측컨대 작가는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작업이나 하고 싶은 것이고, '무위도식'의 원 뜻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예술은 '배고프다'는 인식도 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족적인 의미의 무위도식은 아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말을 걸면서 어떤 선언적이고 충격적인 방법이 아니라, 은근하지만 끈질긴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서 조금씩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켜 나가고 싶은 욕심을 품고 있는 듯하다. 영어 제목에 무위와 번성의 뜻을 같이 가지고 있는 'vegetating'을 쓴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동식물과는 달리, 인간은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들이 볼 때 우리 식물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땅에서 단물만 빨아먹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식물은 인간의 등장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인 45억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산소를 만들고 영양분을 공급하여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게 일을 해 오지 않았나. 반면, 인간은 항상 거창한 명분을 들어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과연 한 것이 있는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쩌면 지구라는 곳에서 무위도식하는 것은 바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식물은 수만 년 동안 인간의 그러한 역사를 말없이 목격(?)하고 체험해 왔다. 어느 날 어떤 불행한 사태로 말미암아 (운석에 맞는 것을 제하고는 인재의 가능성이 높다) 지구가 '초토화' 되더라도 풀들은 남아있을 것이다. 김제민이라는 작가는 "하는 일 없이 맨날 식물이나 그리고 앉아 있다"고 하지만, 그는 묵묵하게 꼭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식물의 모습을 닮고 싶은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작품을 보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평: 무명초
통역: 엘
국문번역: 김제민
The Art of Vegetating
I was quite surprised upon the request to give a critique on the art work by a person called Jeimin Kim. Though his work has been driven by his particular interest in plants, especially weeds, my previous notion was that exhibitions, critiques and such were only affairs of the human world. As you may have guessed, being a nameless plant, neither do I have eyes to look at an art piece, nor can I write. Nevertheless, after suffering persistent persuasion by my old friend El and Jeimin Kim, I finally gave in and agreed to participate in this project. El is one of the few humans with the remarkable capability to communicate with plants. She explained to me in detail about each of Kim's works, and translated his words when necessary. El had been trained for her communication skills under the supervision of Dorothy, who was one of the founding members of the Findhorn Foundation in Scotland. Our language structure is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humans. That is to say, it is more like images or feelings, rather than words. Though there will be surely restrictions in our communication, but I expect that most of my intentions will be conveyed through El's documentation. Actually, this text is not mine alone, but rather a joint production by El, Jeimin Kim and me.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est gratitude to El, who made much effort to make it possible.
Artist Jeimin Kim is said to have worked with plants as subject matter for quite a long time. Since his first solo show titled Homage to the Weeds was in 2005, and plant forms had often appeared in his works even before that, we can safely say it has been at least 7-8 years. So why is he so obsessed with the subject matter of plants?
The artist explains that his first attempt to draw plants was related to the environment he grew up during childhood. He spent most of his childhood as well as teen-age years in a place called Suyu-dong in Seoul, Korea. Also known as "Suyuri," the neighborhood is in the outskirts of the city, at the foot of Samgak Mountain, having the appearance of a rural town, rather than part of the massive capital. While growing up there, the mountain was the artist's playground, where he encountered various trees and plants. The reason diverse plants of the wild give him comfort and a feeling of friendliness can be attributed to such background.
Kim, however, does not gaze at them contemplatively, praise their beauty, or express them based on a feeling of nostalgia. Instead, he personifies them in extreme ways, or uses them as metaphors in an attempt to criticize and mock irrational situations created by humans and society. In Homage to the Weeds held in 2005, weeds, singled out as objects to be eliminated by society, were personified in comic ways and placed on gym machines so that they may cultivate their vital energy in order to survive in this world. In the exhibition Botanopolis of 2008, the four virtuous plants (plumb, orchid, chrysanthemum, and bamboo), which historically appear in traditional Eastern art made by the literati, take up various jobs in order to make a living, while in the series Virtues of a Gentleman, which is a parody of the traditional literati-style painting of Korea called muninhwa, weeds appear instead of the four virtuous plants, representing secular virtues considered to be important by people today, thus making spectators laugh. 24 Self-Defense Techniques by Weeds, shown in 2012, was a parody of old martial arts scripture, and included the humorous depictions of weeds training in various skills to defend themselves from various threats. For us plants, who live a different time from humans, such direct personification seems awkward, but because we usually live and die at the very same spot we were born, the rapid movement and action of humans or other animals sometimes evoke a sense of envy. In that sense, I was impressed by the artist's work "Dream of Flight (2008)," etc.
The works shown in Jeimin Kim's exhibitions mostly deal with plants as subject matter, but we can find some other common aspects as well. First, in terms of form, the artist uses diverse media, including drawing, painting and photography, unattached to a particular form of medium, but seems to be consistently maintaining a certain flexible or loose attitude in the usage or management of such media. When he draws or paints a subject, he boldly omits the background and often simplifies the subject itself, sometimes to the extent of making it look like some kind of "symbol." Many of his paintings have the feeling of loose drawing, rather than having the thick texture of traditional oil painting. Meanwhile, in terms of contents, the artist presents certain aspects of human lifestyles or society in symbolic, satirical or twisted ways, or sometimes just observes such situations from a detached, but bitter position. Thus, in his work the narrative is a crucial element, and the media or forms he uses are ultimately means to communicate the "story" he is trying to tell.
I believe the drawing-like method, which is light rather than heavy, flexible rather than fixed, and amorphous rather than typical, well-corresponds with the anonymous tender plants the artist is interested and is trying to express. Plants seem to be fixed, but are always moving, seem to be dead but are very much alive, and seem to be tender but have an unmatched toughness as well. The artist's fluid drawing method, with generous margins, also give more room for viewers' imaginations.
The exhibition, The Art of Vegetating, remains in the same context as the artist's previous exhibitions, however, I can sense some change in the way he chooses his themes and expresses them. While in the past the artist used direct ways to talk to spectators, such as personifying plants, making direct comparisons or using text in the picture for clearer communication, in this exhibition he seems to have chosen a method of quietly showing something to the viewers. For example, the photographic work Ivy Drawing (2013) simply looks like something drawn by the ivy itself, and the Tree series (2013) also consists of odd-shaped trees painted on the canvas. The change in the artist's way of showing is also suggested in the term "doing nothing (muwi)" in the title. He seems to be going in a direction of leaving interpretation open to the viewers, rather than declaring something directly. If so, what is the artist trying to say in The Art of Vegetating?
Originally the term "muwi-doshik(無爲徒食)" means "doing nothing but just eating," but the artist playfully transformed into "muwi-doshik(無爲圖植)," that is "doing nothing but drawing plants." According to the artist, the English word "vegetate" implies "spending time," "just being," "sleeping," "idling," as well as "flourishing" and "taking root." "Art" can mean the art of an artist, as in fine art, and also a technique or skill. In Eastern thought, "doing nothing" can be associated with the Taoist idea of "muwi-jayeon," which means living according to reason without going against the will of nature. From the standpoint of humans this may appear as tolerance for a lazy and submissive attitude, but it is not that simple. Based on the complex meanings suggested by the title, I am assuming that the artist does not wish to do anything but work on his art, and though there is the common notion that "the artist is hungry," he hopes to overcome this, "living well and eating well." This, however, is not merely a self-satisfactory sense of "muwi-doshik." Through his work, the artist seems to want to slowly change people's consciousness by expressing his ideas in a subtle but persistent way, rather than a declarative or shocking way. It is in the same context that he used the word "vegetating," which has the meanings of both idling and flourishing in the English title.
Unlike other animals or plant species, humans seem to be caught up in a compulsion that they always must do something. In the eyes of humans us plants may look as if we were doing nothing but just sucking sweet juice from the earth. But in fact plants have been making oxygen and supplying nutrition so that various life forms, including humans, can stay alive, since they appeared on the face of Earth one 4.5 billion years ago. On the other hand, humans are always "doing" something under some grandiose cause, but should give some careful thought on whether they have really done anything. I am sorry to say, perhaps it is the humans that are doing nothing but eating on this place called Earth. Plants have witnessed(?) and experienced such history of humans for tens of thousands of years. One day even if Earth falls to its ruins due to an unfortunate event (which will most likely caused by humans, unless it is a meteorite), plants will most likely survive. Artist Jeimin Kim says he is "not doing much but just sitting around and drawing plants," but I think he wants to be like a plant, quietly playing a crucial role. I believe it is that idea he wants to share with the people who see his works.
Critique by Nameless Plant
Interpretation by El
English-Korean Translation by Jeimin Kim
* The word "무위도식(無爲圖植)," pronounced "muwi-doshik" in Korean, literally means "doing nothing but drawing plants." It is a pun on "無爲徒食," which means eating the bread of idle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