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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The Squatters

무단점거자들 The Squatters

김제민

길을 걷다보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를 풀들이 담장 밑 시멘트의 갈라진 틈새나 보도의 벽돌 사이, 지붕 위에 쌓인 한줌의 흙먼지 뭉치를 터전 삼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싹을 틔우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또, 마치 추상화를 그리듯 기묘한 패턴으로 벽면을 덮고 있는 담쟁이 넝쿨을 보게 된다. 담쟁이를 처음 심은 것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 넝쿨이 벽을 타고 오르며 만드는 형상은 식물이 햇빛, 중력, 벽면의 구조 등과 반응하여 만들어내는 자율적인 것이다.

인간은 야생의 자연을 다양한 방법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면서 생산력을 높이고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그렇게 계획되고 통제되는 문명의 정점인 도시 속에서도 ‘잡초’들은 틈새를 공략하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간다. 사람들이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 자연에 적응하고 그것을 이용해 왔듯이, 자연도 생존을 위해 인간문명 속에서 적응력을 키우며 진화해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은 이제 상투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고, 역시 척박한 도시의 한 작은 공간에서 끈질기게 적응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작고 약한 존재로서 불안정한 환경 속에 사는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번 전시에서 나는 사람들의 계획과는 무관하게 도시 환경 속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하는 식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정리하려는 속성이 있는 도시인들에게 그들은 ‘무단점거자들’이다. 그러나 나는 소소하지만 끈질기고, 약하지만 강한 이 잡초들에게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최근 조경이나 도시계획 분야에서 이러한 도시 식물들을 ‘잡초’ 대신 ‘자연발생 식물(spontaneous plants)’로 규정하고 그것들의 긍정적인 기능에 주목하고 이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부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시 잡초들은 의도적으로 재배되는 식물과 마찬가지로 산소를 공급하고, 열섬현상을 완화하고, 빗물을 흡수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강인한 특성을 도시 녹지 조성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유용성’을 기준으로 식물들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들이 보여주는 생명의 경이로움, 미미한 존재들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진행되는 상상의 대화, 회색 도시를 배경으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녹색 형상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각각의 식물은 그것이 놓인 환경이나 처지, 취하고 있는 자세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생성한다. 그런데 거기서 읽히는 이야기는 결국 식물을 매개로 전개되는 나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201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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