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White Paper on the Life of Weeds (by Hamm SungUn)
풀이 눕는다
풀과 사람을 엮어 표현하는 것은 비단 동양권 문화에서만은 아닌 듯 하다. 일례로 우리에게 익숙한 민초(民草)라는 표현과 더불어 영미권에도 같은 의미로 grass roots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김제민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은 그렇게 흔한 의미로 사용된다. 2005년에 열린 개인전 타이틀이 <잡초에 대한 오마주>였으니 풀에 인격을 부여하거나 풀의 일생에서 사람의 인생을 발견하는 작업이 시작 된 것도 8년 이상일 것이다. 그는 작품 속 잡초에 현대사회의 권력자들을 투영시키지는 않는다. 죽자 사자 도망치고, 숨고, 위장하고, 밟히고, 상대에게 별 위해도 안 될 공격을 하는 흔하고 뻔한 필부의 삶이 보일 뿐이다. 바람이 불면 제일 먼저 누워버리고, 해가 좋으면 가장 먼저 일어나 팔을 벌리는 잡초와 우리는 얼마나 닮았나. 비단 김수영의 시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보도블럭 사이에서 자라는 잡초에서 제 자신을 본다.
풀에 대한 관심은 그가 살던 수유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일 게다. 지금이야 서울 강북구 일대에서 가장 번쩍대는 거리 중 하나가 되어있지만 사실 수유리는 오래 전부터 서울권 등산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동네였을 만큼 산이 가까운 동네였으니까. 다만 어린 김제민의 눈에 비친 풍경을 현재의 작업으로 이어진 유일한 이유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그가 풀의 일생에 인간의 삶을 대입시켜 바라봐야 직성이 풀릴 만큼 인간과 인간사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뼛 속 깊이 점철된 인간인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평범하고 흔한 사람일 뿐이다. 그의 작품 속 풀은 그렇게 우리를 닮았고, 작가 자신을 닮기도 했다.
현명한 힘 빼기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제일 먼저 웃음이 나오고, 잠시 후 작품의 의미를 ‘이런 글 없이도’ 이해하게 되며, 마지막엔 작품의 형식에 대해 의문이 든다. 특히 2012년에 열린 개인전 <잡초비전24>의 경우는 더 그렇다. 종이 위에 먹으로 대강 그린 듯한 잡초의 이미지도 모자라 친절하게 작품 제목까지 써 넣은 작품을 보면 ‘직관적’이라는 말도 모자라다. 이번 전시에는 판화 작품들도 선보이는데 슥슥 그어나간 선의 가벼움은 여전하다. 판화와 드로잉, 사진 등 여러 매체를 이용해 작품을 하고 있지만 매체불문 공통적으로 툭툭 내던지는 듯한 가벼움과 그것에서 비롯된 넉넉함이 돋보인다. 컨템포러리라는 근사한 말로 명명된 근래 미술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일 게다. 읽히지 않으니 어렵고, 어려우니 다가가기 어렵다. 애초에 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갤러리에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고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일’이다. 김제민의 작업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거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운필의 힘이다.
미술작품은 남다른 아우라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김제민의 작품은 지나치게 대중적이거나 가볍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의 아우라가 위치한 곳, 혹은 발현한 곳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러한 오독은 근거를 잃는다. 그의 작품을 두고 ‘형식이 부여한 아우라와 작품의 내용이 가진 아우라’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그는 후자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힘이 발생하는 곳은 이미지 뒤편에 있다. 김제민의 의도된 힘빼기가 현명한 이유다. 흔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작품이 굳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
클리쉐는 힘이 세다
그러나 간명하고 직관적인 그의 작업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보통사람을 풀, 특히 잡초에 비유하는 것은 예술의 모든 장르에서 사용돼 온 아주 오래된 클리쉐 중 하나다. 좋은 대학을 두 곳이나 나와서, 지금은 박사과정을 밝고 있는 작가가 굳이 클리쉐를 작업에 끌어들이는 것은 의도된 힘빼기를 논하기에 앞서 되려 어떤 ‘오해의 장벽’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해 온 작업을 2013년 말에 다시 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김제민은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재의 시기에 만들어져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주입된 실체 없는 ‘단일민족’의 신화는 ‘혼혈’이라는 단어에 부정적 의미를 덧입혔다. 오랫동안 혼혈이라는 말은 대체로 상대를 비하하거나 업신여기기 위해 사용되곤 했고, 그 흔적은 지금도 적지 않게 남아있다. 이 못나고 부끄러운 흔적은 다수의 혼혈인들을 강제로 디아스포라로 만들었고, 이 강제적 디아스포라들은 지금도 양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김제민은 시대가 만든 강제적인 디아스포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혼혈인의 작품에 감화, 감동받아 마땅하다.”는 억지를 부리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의 개인사가 작품에 보이는 클리쉐를 어떻게 이해할 지에 대한 가이드맵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잡초의 생태를 살펴봐야겠다. 잡초는 씨앗을 날려 번식한다. 씨앗이 떨어지는 곳이 잡초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사람이 뽑아 없애기 전에 다시 씨앗을 날려 세대를 이어간다. 발붙이고 사는 곳이 제 집이고, 영역이다. 조그만 틈이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잡초들의 삶은 이어진다. 김제민의 삶도 그러했을 터다.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태어나 강북구 수유리에 자리를 잡고 40여 년을 살다, 이제는 방배동 어디쯤에 자리를 잡은 그의 삶은 (이사한 거리를 떠나서) 그야말로 잡초의 삶이다. 보통사람의 이미지를 뒤집어 쓴 잡초는 클리쉐에 불과하지만, 혼혈인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 개인의 삶이 다시 한 번 중첩된 잡초의 이미지는 남다르다. 김제민은 잡초를 통해 ‘매우 일반적인 보통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자기 자신에 덧씌움으로써 작가 자신에게 일종의 대명사 역할을 부여함과 동시에 작가 본인의 남다른 성장과정을 일반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잡초와 보통사람과 나는 같은 존재다’, 라는 명제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풀을 이용해서 보통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남으로써 잡초와 작가, 그리고 일반대중을 동일시하는데도 성공을 거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의 감상자와 작가, 그리고 작품의 거리는 극적으로 좁혀진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관찰하는 타자의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스스로 관찰 대상 그 자체가 되는 것.
그래서 김제민의 작품은 사회와 인간, 그리고 작가 자신에 대한 꼼꼼하고 진중한 관찰일기이며 동시에, 긴 시간 내재된,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이미 실현된 욕망-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같은 존재로서의 자아를 인정하고, 인정받기 원하는-의 예술적 재현이기도 하다.
- 갤러리 버튼 함성언
The Grass Lies Down
Expressions that link grass with people are not found only in Eastern culture. For example, the familiar expression “mincho (people-grass)” is similar in meaning to the term “grass roots” in English. The grass seen in Jeimin Kim’s works is used with such common meaning. Since the title of his solo show in 2005 was Homage to the Weeds, he has been personifying plants or trying to discover people’s lives in plants’ lives for at least 8 years. Kim does not project the powerful figures of modern society upon the weeds in his works. They merely represent the common and obvious lives of the common person, running for his life, hiding, concealing, getting stepped on, and making harmless attempts of attack. How similar are the lives of weeds, which lie down the instant the wind blows and get up arms open when the sun is good, to ours. Needless to quote the poem by Kim Su-Young, we all see ourselves in the weeds growing from the gaps between the tiles on the sidewalk.
His interest in grass most likely began from when he was living in Suyuri, located in the outskirts of Seoul. Now it is one of the flashing neighborhoods in the Gangbuk district of Seoul City, but Suyuri has long been outpost for mountain climbing, due to its proximity with the mountains. But there is a problem with considering the landscape seen in young Jeimin Kim’s eyes as the only reason leading him to his works today. Moreover, he is not someone with an endless affection and bone-deep interest in humanity so as to have to substitute plants’ lives for humans. He is just a normal and common guy. The plants in his works thus resemble us and resemble the artist as well.
Wise Loosening
When I look at his work, first comes the laughter, and then I com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work even without “this kind of text,” and finally a question arises about the form of the work. This is more so with his solo exhibition 24 Self-Defense Techniques for Weeds in 2012. Even the term “intuitive” is insufficient to describe his seemingly careless Korean ink drawings on paper, and the extra-kind titles written on the same paper. Such lightness continues in his most recent exhibition, as seen in the thin lines quickly drawn to produce a set of etching prints. Though he uses a variety of media, such as drawing and photography, the lightness he tosses about, and the ampleness resulting from it can commonly be recognized. One of the main characteristics of recent art, named with the charming term “contemporary,” is that it cannot easily be read. Because it cannot be read it is difficult, and because it is difficult it is hard to approach. Unless it is someone who is already interested in art, it would be “work” for one to enter a gallery, appreciate the art works and share the sentiments. The most outstanding aspect of Jeimin Kim’s works is that there is very little distance between the work and the viewer. That is the power of this brushwork.
To people who believe works of art should carry extraordinary aura, Kim’s works may seem too popular or light. But if they could find where the aura is, or where it comes from, such misconceptions would lose ground. If we were to determine between the “aura given by the form and the aura in the contents” concerning his work, he would seem to be focusing on the latter. The power of the work is generated from behind the image. This is why the artist’s intentional loosening up is wise. There is no reason for the work to be difficult when it is talking about common and normal people.
Clichés are Strong
His simple and intuitive works, however, also puzzle many people. Comparing ordinary people to grass or weeds is one of the old clichés that has been used in all genres or art. The fact that the highly-educated artist, now undertaking a doctorate course, introduces clichés in his works may create a certain “wall of misunderstanding,” putting the issue of intentional lightness aside. Thus, we have to look for a reason for doing work, which has been done by so many people over the years, again now at the end of 2013.
Jeimin Kim was born between a Korean father and American mother. The myth of “pure nation,” which was created during the era of dictatorship and fed to the majority of Koreans, gave a negative meaning to the idea of racial mixture. For a long time, the term mixed-blood was used in despise against others, and such traces still remain in the culture. These ugly and shameful traces forced many people of mixed nationality into a state of Diaspora. I am not trying to insist that “therefore Kim is a Diaspora forcibly made by the times, and thus we must be impressed and moved by his works.” Nevertheless, it is clear that his personal history will serve as a guide map on how to understand the clichés in his works.
Let us examine the life of weeds. Weeds disseminate their seeds to breed. Where the seed falls becomes the weed’s new place of life and the weed sends out more seeds before someone comes to pull it out in order to continue the next generation. Where the weed stands is his home and territory. As long as they can find even the smallest fringe, the life of weeds continues. Kim’s life was probably similar. Born in Princeton, New Jersey, and moving to Suyuri, Gangbuk, Seoul where he lived for almost 40 years, before moving to Bangbaedong, Seoul, his life (besides the distance he moved) is like the life of a weed. The weed dressed with the image of an ordinary person is merely a cliché, but the weed image overlapping with the artist’s personal history is different. By adding the image of “very ordinary person” on himself through the weed, Jeimin Kim successfully gives himself a certain role as a pronoun, and at the same time generalizes his quite unique process of growth. That is, he establishes the proposition: “The weed, the ordinary person, and I are the same being.” In addition, he also succeeds in escaping from the position of observer, who uses grass to express the life of ordinary people, and identifying with the weeds and general public. This is the very point where the distance between the appreciators and the artist, or his works, is dramatically reduced. He is playing the role of the other, observing from an objective position, and becoming the object of observation simultaneously.
Hence, Jeimin Kim’s works are not only a meticulous and serious journal of observation on society, humans and the artist himself, but also an artistic representation of a desire, which has been immanent for a long time and has already been realized long ago—to recognize and be recognized as a being equal to the people we meet on a daily basis.
Hamm Sun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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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8th, 2017 - 19:27
I wanna to know, the author of the article himself made the conclusions having familiarized himself with the works of Jamine Kim, or took directly the interview and, as the author of the works, Mr. Kim agrees with such conclusions?
I have a suspicion that this is not entirely true.